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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정체성 유예, 이탈감, 선택의 심리) 저는 이 영화를 꽤 오랫동안 외면했습니다. 한국어 제목이 뭔가 로맨틱 코미디처럼 들려서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가 가장 망가졌던 시절을 꺼내 보여주는 것 같아서 며칠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방황이 실패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말 대신 장면으로 보여줍니다.한국어 제목이 만든 진입 장벽, 그리고 원제의 온도이 영화의 원제는 노르웨이어로 '세상에서 가장 최악인 사람(Verdens verste menneske)'이고, 영어 제목도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입니다. 저는 이 제목이 훨씬 더 이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제목은 연애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들리는데, 영화가 실제로 이야기하.. 2026. 5. 26.
영화 엘리자베스타운(배경, 치유, 로드트립) 저는 이 영화를 틀어놓고 처음 20분 동안 집중을 못 했습니다. 요즘 되는 일이 없어서 한숨이 잦았고,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실패한 사람이 낯선 곳에서 조금씩 다시 숨을 쉬게 되는 이야기, 엘리자베스타운이 그런 영화였습니다.배경: 카메론 크로우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이 영화가 온전히 픽션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실제로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감정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낯선 친척들과의 어색한 시간들을 영화 안에 녹여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그래서인지 장례식 장면들이 유독 살아 있습니다. 연출이 아니라 기억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거든요.영화의 배경인 켄터키주 엘리자베스.. 2026. 5. 26.
영화 이지 버츄 (Easy Virtue)(원작 희곡, 탱고 장면, 안락사 논쟁) 내가 예상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서 가볍게 틀었다가, 영국 상류사회의 위선을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해부하는 영화인 줄은 몰랐거든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는 자유분방한 미국 여성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영국 귀족 가문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보면 볼수록 단순한 고부 갈등극이 아닙니다.원작 희곡: 노엘 카워드가 먼저 썼다제가 이 영화를 찾아보고 나서 처음 한 일이 원작을 검색한 것이었습니다. 영화가 워낙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게 그냥 시나리오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거든요. 예상대로였습니다. 는 영국의 극작가 노엘 카워드(Noël Coward)가 1924년에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합니다.노엘 카워드는 20세기 전반 영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인물.. 2026. 5. 26.
바튼 아카데미 (연기력, 사제관계, 희망의 심리학) 연말 연초가 되면 저는 묘하게 무거운 영화가 당깁니다. 화려한 블록버스터보다 조용하고 오래 남는 작품들이요. 그렇게 찾아보다 만난 게 였는데, 솔직히 처음엔 제목만 보고 지나쳤던 영화였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개봉 당시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극찬을 받은 작품이더군요. 직접 보고 나서야 왜 그랬는지 이해했습니다.충돌할 듯 충돌하지 않는 두 사람의 연기력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미국 명문 사립학교 바튼 아카데미입니다. 크리스마스 방학에 집에 돌아가지 못한 교사 폴 허넘과 학생 앵거스 털리, 그리고 학교 식당 조리사 메리 램이 기숙사에 함께 남겨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설정만 보면 흔한 성장 드라마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습니다.폴 허넘을 연기한 폴 지아마티는 이 영화로 커리어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2026. 5. 25.
마이클 잭슨 영화 마이클(자파 잭슨, 싱크로율, 팝의 황제)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습니다. 음악은 귀에 익었지만, 그 뒤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만 알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자파 잭슨의 싱크로율, 기대 이상이었습니다마이클 잭슨의 친조카인 자파 잭슨이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혈육이라서 캐스팅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셨을 텐데,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크린에서 보니 그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퍼포먼스(Performance)란 단순히 춤과 노래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감정까지 무대 위에서 구현해내는 종합.. 2026. 5. 25.
비포 미드나잇 (현실묘사, 결말분석, 카르다말리) 비포 시리즈 3편 중 가장 불편하고, 동시에 가장 솔직한 작품입니다. 1995년 기차 안 첫 만남부터 18년을 함께 달려온 제시와 셀린이 이번엔 그리스 카르다말리의 햇살 아래서 서로에게 가장 모진 말을 내뱉습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이게 로맨스 영화가 맞나 싶어 잠시 멈칫했습니다.9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 — 현실묘사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을 거쳐 비포 미드나잇(2013)이 도달한 지점은 명확합니다.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유지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파리에서의 재회 이후 9년, 두 사람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쪽 카르다말리에서 여름 휴가를 보냅니다. 쌍둥이 딸도 있고 생활도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대화의 결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26.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