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을 보면서 침팬지 벤이 어린 개체인지 다 큰 성체인지 끝까지 헷갈렸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침대 밑에 숨을 만큼 작아 보이다가, 또 다른 장면에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로 등장하는 통에 혼란이 왔는데요. 결론적으로 다 큰 침팬지가 맞았습니다. 이 혼란이 오히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의 시작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지알로 장르의 귀환, 그리고 폐쇄 공간의 공포
감독 요하네스 로버츠는 폐쇄 공간을 활용한 긴장감에 있어서는 꽤 검증된 연출자입니다. 47미터 깊이의 수중 우리에 갇힌 자매를 그린 <47미터>(2017)로 이름을 알린 이후, 호숫가 캠핑장, 좀비 바이러스로 봉쇄된 도시 등 외부와 단절된 공간을 즐겨 무대로 삼아 왔습니다.
<프라이메이트>에서 그 무대는 하와이 암벽 위에 세워진 고립된 호화 주택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저 집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진심으로 부러워했는데, 그 아름다운 집이 공포의 밀실로 바뀌는 순간의 낙차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는 지알로(Giallo) 장르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주입니다. 여기서 지알로란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범죄·공포영화의 한 사조로, 이탈리아어로 '노란색'을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치밀한 서사보다 자극적 설정, 충격적 비주얼, 귀를 사로잡는 음악을 무기로 삼는 이 장르는 1980년대 미국 슬래셔(Slasher) 필름의 직접적인 영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슬래셔란 날카로운 흉기를 이용한 살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공포 하위 장르를 가리킵니다.
<프라이메이트>는 위기를 예고하는 카메라워킹, 살인 장면의 익스트림 클로즈업(Extreme Close-Up) 같은 비주얼 기법을 통해 지알로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연합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란 피사체의 극히 일부분만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촬영 기법으로, 시각적 충격과 심리적 불안감을 극대화하는 데 쓰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드리언 존스턴이 작곡한 전자음악은 단조롭지만 귀에 딱 달라붙는 질감으로, 과거 파비오 프리찌(Fabio Frizzi)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고블린(Goblin)이 지알로 영화에 남긴 사운드트랙의 느낌을 그대로 복원해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음악만으로도 심장이 저절로 쫀득해지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말리그넌트>(2021, 제임스 완 감독)가 지알로 부활의 신호탄을 쏜 이후, <프라이메이트>는 그 계보를 잇는 수작으로 기록될 만합니다. 고전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이 뒤섞이는 지점이 이 영화의 핵심 쾌감입니다.
지알로 장르의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비주얼 연출 (극단적 클로즈업 활용)
- 심리적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개성 강한 전자음악
- 치밀한 서사보다 감각적 긴장감을 우선하는 구성
광견병이 부른 공포, 그리고 아쉬움
영화는 시작부터 침팬지 벤의 이상행동 원인을 자막으로 명확히 짚어줍니다. 바로 광견병(Rabies)입니다. 광견병이란 광견병 바이러스(Lyssavirus)에 감염된 동물에 물렸을 때 발병하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감염되면 물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증상이 나타나 공수병(Hydrophobia)이라고도 불립니다. 여기서 인수공통전염병이란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전파될 수 있는 감염병을 말합니다.
광견병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염병 중 하나입니다. 1885년 파스퇴르가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치료 수단이 전무했으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국내에서는 철저한 예방접종 덕분에 2004년 이후 사람에게서 광견병이 발병한 사례가 없지만, 야생동물과 일부 가축에서는 여전히 산발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프라이메이트>에서 광견병에 걸린 벤의 공격성은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이 꽤 많아서 살짝 놀랐을 정도입니다. 특히 루시의 여동생 에린이 다리를 물리고 티셔츠로 지혈을 하는 장면은, 영화 속 긴박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해준 순간이었습니다.
광견병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스티븐 킹 원작의 <쿠조>(1983)가 대표적입니다. 고장 난 차 안에 갇힌 모자가 광견병에 걸린 개와 사투를 벌이는 이 작품은 폐쇄 공간 공포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28일 후>(2002) 역시 실험실 침팬지에서 비롯된 '분노 바이러스'가 확산된다는 설정으로, 광견병을 모티프로 삼은 좀비물의 계보를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다만 제가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미친 침팬지의 공격성이 기대만큼 오싹하지는 않았습니다. 벤이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 때문에 인물들이 수영장 안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빌런과 주인공이 실제로 맞붙는 직접 대치 장면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친구들 각각이 개성을 드러낼 틈도 없이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놀러 온 사람들이 아무것도 못 하고 사라진다는 인상이 남았는데, 이건 공포보다는 잔혹함에 가까웠습니다. 오싹한 공포를 기대하셨다면 살짝 기대를 조정하고 보시길 권합니다.
결말 부분에서도 약간 이질감이 남았습니다. 루시와 에린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사망했는데, 아버지 아담이 살아남은 두 딸을 다독이며 다 괜찮다는 표정을 짓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자기 가족만 살면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의 회복이라는 고전적 주제 자체는 모처럼 반갑지만, 마무리가 조금 더 묵직하게 그 상실을 담아줬으면 했습니다.
<프라이메이트>는 지알로 장르의 감각적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공포보다 잔혹함에 가까운 영화라는 점은 미리 알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심장 쫀득하게 조이는 스릴을 즐기는 공포영화 팬이라면 89분의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겁니다. 단, 오싹한 공포 분위기보다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맞춰두시면 더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