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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재개봉 (미장센, 코고나다, 헤일리 루 리처드슨)

by myview22087 2026. 6. 3.

영화를 보기도 전에 저는 처음에 이 영화가 '건축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일 거라 지레짐작했습니다. 인디애나주 콜럼버스라는 모더니즘 건축으로 유명한 도시가 배경이라는 설명만 듣고는요. 실제로 보고 나서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2026년 6월 3일 재개봉한 코고나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콜럼버스는, 건물을 찍은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계산된 화면, 그러나 차갑지 않은 이유 — 미장센과 필로숏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대칭 성애자'였습니다. 제가 직접 써본 표현이라 좀 과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이 감독은 정말로 화면의 구도와 균형에 집착합니다. 이런 장면을 어디서 봤나 싶었는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였습니다.

오즈의 영화에는 '필로숏(pillow shot)'이라는 기법이 자주 등장합니다. 필로숏이란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정적인 공간이나 사물을 잠시 담아내는 쇼트로, 장면과 장면 사이에 숨을 고르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코고나다는 이 기법을 콜럼버스의 건축물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만춘(1949)이나 동경 이야기(1953) 같은 오즈의 작품들과 이 영화의 주요 장면을 비교하는 영상 리뷰를 찾아봤을 때, 그 닮음이 우연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잉마르 베리만이나 로베르 브레송의 영향도 감독 본인이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코고나다라는 예명 자체가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각본가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데뷔 전 제작한 영상 에세이의 주제도 이 감독들이었으니 영향을 부정하기는 어렵죠.

제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걸렸던 지점은 이겁니다. 감독의 연출 의도가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면, 이야기꾼으로서는 실패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관객이 구도의 대칭을 의식하는 순간, 인물의 감정보다 형식이 앞서버리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한 쇼트 한 쇼트가 정밀하게 계산돼 있었지만, 그게 결코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8일 만에 전체를 촬영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그랬습니다. 모든 게 이미 감독의 머릿속에 완성돼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콜럼버스의 연출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카메라가 거의 움직이지 않고, 건물 정면을 오래 바라보는 쇼트가 반복된다.
  • 인물 간의 대화가 극적인 충돌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 배경이 되는 모더니즘 건축물이 단순한 세트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호응하는 구조로 배치된다.

이런 방식은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처음 20분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초반엔 솔직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나면 그 정적인 화면 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읽히기 시작합니다.

두 배우의 연기, 그리고 이 영화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이유

일반적으로 이 영화는 건축 영화 혹은 아트하우스 영화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콜럼버스는 부모와의 관계, 포기한 꿈,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영화입니다. 건축물은 그 감정들이 투영되는 거울일 뿐입니다.

주인공 진(존 조)은 코마 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두고 콜럼버스에 머뭅니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냉담합니다. 서울에서 번역가로 일하는 진이 마감 압박을 안고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로 감독이 제시하는 건 한국의 '객귀(客鬼)' 개념입니다. 객귀란 임종을 지키지 못해 한을 품고 떠도는 혼령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가족의 임종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문화적 압박의 근거로 쓰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논리가 영화 안에서 이미 변형된 형태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실제 한국의 장례 문화는 21세기 들어 급변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임종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장례도 전문 장례식장에서 치러집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객귀 논리가 현재까지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저도 의문입니다.

반면 캐서린(헤일리 루 리처드슨)은 콜럼버스라는 도시의 건축에 진심인 인물입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녀는 대학에 가고 싶지만,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상황은 대칭을 이룹니다. 진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고, 캐서린은 어머니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 대칭이 화면의 구도와 겹쳐지는 방식이 이 영화가 형식과 내용을 가장 잘 통합한 부분입니다.

헤일리 루 리처드슨의 연기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사 없이 눈빛과 작은 몸짓만으로 캐서린이 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데,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 배우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영화 용어가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세트·의상·배우의 동선을 총체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개념을 말합니다. 코고나다의 미장센 안에서 헤일리 루 리처드슨은 과하지 않게, 그러나 정확하게 자기 감정을 채워 넣습니다.

코고나다의 본명은 박중은으로, 서울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카고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애프터 양(2021)에서도 헤일리 루 리처드슨이 출연하는데, 두 영화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런데 그 탐구가 단순히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시아 전반의 문화적 감수성을 아우른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롭습니다.

콜럼버스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유 역시 이 지점에 있다고 봅니다. 선댄스 영화제는 미국 독립 영화의 최대 등용문으로, 상업적 문법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국제적 평단의 주목을 받는 무대입니다(출처: 선댄스 영화제 공식 사이트). 이 영화가 그곳에서 처음 주목받은 뒤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건, 형식 실험에만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감정을 담아냈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비평 매체 로저 에버트닷컴은 콜럼버스에 대해 "건축이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콜럼버스는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분명 낯선 영화입니다. 하지만 애프터썬이나 패터슨처럼 잔잔한 여운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개봉 기회가 흔치 않은 작품인 만큼, 이번에 극장에서 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화면의 정적인 구도가 스크린 크기에서 느껴지는 방식은 집에서 보는 것과 다릅니다. 저는 그 차이가 이 영화에서는 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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