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습니다. 줄거리도, 결말도, 인물 관계도 전부 머릿속에 다 들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반전 같은 건 기대도 안 했고,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영화관 의자에 앉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게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수어 연기와 감정 전달, 말 없이도 꽉 찼던 이유
영화관 에어컨이 유독 강했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봤는데, 들어가는 순간부터 냉기가 만만치 않아서 조금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운 줄을 잊었습니다. 홍경과 노윤서, 두 배우의 눈빛이 그 공간을 채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청설은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수어(手語)로 채웁니다. 수어란 청각장애인이 손의 모양, 위치, 움직임과 표정을 결합하여 의사소통하는 시각 언어를 말합니다. 영화는 이 수어를 단순한 설정 장치로 쓰지 않습니다. 두 인물이 주고받는 손짓 하나하나가 대사 이상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대사가 없는 장면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쉬운데, 이 영화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목소리가 없는데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배우들의 시선 연기에서 찾았습니다.
노윤서가 연기한 여름은 비구어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 방식으로만 감정을 전합니다. 비구어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이나 문자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표정, 몸짓, 눈빛 등 신체 언어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영화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 전달 중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낮고, 표정과 몸짓이 훨씬 큰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노윤서는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하듯 연기했습니다. 김민주의 표정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여름의 동생 가을로서 조연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줬는데, 특히 용준을 응원하는 장면에서의 표정이 글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아 있었습니다.
청설을 보면서 제가 놓치지 않으려 했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어와 표정만으로 감정이 얼마나 전달되는지
- 홍경의 서툴지만 솔직한 접근 방식이 억지스럽지 않은 이유
- 대사 없는 장면에서 배경음악과 풍경 소리가 감정을 어떻게 보완하는지
- 여름이 용준을 밀어내려는 이유가 언제쯤 납득되는지
이 네 가지를 붙잡고 보니, 감정선을 따라가는 속도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청각장애 서사와 현실의 접점, 영화가 착하기만 하진 않았던 이유
많은 분들이 이 영화가 지나치게 '착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보는 내내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세상이 따뜻하게 그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수영장 갈등 장면에서 저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장애인 선수가 수영장 사용을 두고 겪는 갈등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어릴 때 TV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수영장 청소를 조건으로 겨우 수영할 수 있었던 선수의 이야기였는데, 그 장면이 영화에서 재현되는 순간 저는 꿈같은 이야기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 한 장면이 영화 전체의 무게를 달리 만들었습니다.
장애 포용 서사(Disability Inclusion Narrativ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장애를 가진 인물을 비극의 주인공이나 감동의 소재로만 소비하지 않고, 그 인물의 욕망과 관계, 일상을 온전하게 그리는 방식을 말합니다. 청설은 이 방향에 상당히 충실한 편입니다. 여름은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게 아니라, 여름이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용준이 반하는 구조입니다. 선의와 동정의 경계라는 질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데, 영화는 그 선을 비교적 단단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문화 접근권과 스포츠 참여에 관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체육 시설 접근성은 여전히 비장애인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출처: 국민체육진흥공단). 영화가 그 현실을 짧은 장면으로 담아냈다는 것, 저는 그 점이 진심으로 좋았습니다.
후반부 감정선이 다소 급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두 사람이 충분히 대화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인데,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운 전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그게 오히려 선입견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특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과도한 배려가 어떤 의미에서는 선입견의 부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남겨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고 오래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제가 늘 착한 영화를 찾아다닌다고 스스로 말해왔는데, 청설은 그 기준에 가장 가깝게 들어맞는 영화였습니다. 나에게 '청설'은 홍경과 노윤서, 그리고 김민주입니다. 원작이 있다고 해도 굳이 비교하며 찾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이 영화 자체로 기억에 오래 남겨두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는 그 시간이 행복했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