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작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봐도 괜찮을까요? 저도 그 고민을 했습니다. 이름은 귀에 익은데 정작 위키드가 어떤 이야기인지, 뮤지컬 넘버는 어떤 분위기인지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극장에 들어갔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래도 됩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봤더니 엔딩에서 더 크게 당했습니다.
원작을 몰라도 위키드에 입장하는 법
위키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원작 뮤지컬은 2003년 초연 이후 20년 넘게 사랑받아온 장기 흥행작으로,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Wicked: 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에서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익히 아는 오즈의 마법사 세계관에서 '악당'으로 불린 초록 피부의 마녀가 사실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역추적하는 구조입니다.
제가 극장에 들어갈 때 가진 정보는 딱 그 정도였습니다. 신시아 에리보가 엘파바 역을, 아리아나 그란데가 글린다 역을 맡았다는 것, 그리고 뭔가 엄청 화려하다는 것. 뮤지컬 넘버를 단 한 곡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선입견도 없이 앉았습니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서사 구조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궤적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란 주인공이 이야기 시작 시점과 끝 시점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로, 특히 뮤지컬 영화에서는 각 넘버가 그 변화의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엘파바의 아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꽤 일관성 있게 유지됩니다. 그래서 저는 엘파바에게만큼은 처음부터 집중이 됐습니다.
원작을 몰라도 입장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설명보다 감정으로 먼저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고, 차별받는 존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꽤 직관적이기 때문입니다.
160분이라는 러닝타임, 진짜 문제가 뭔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6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은 몰랐거든요. 화면은 계속 화려하고, 노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어느 순간부터 흥미가 붙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정신줄을 거의 놓을 뻔한 순간이 두세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겨우 붙잡아 준 장면들이 없었다면 별점은 달라졌을 겁니다.
돌이켜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영화가 지루했던 게 아니라, 넘버 자체가 제 취향이 아니었던 겁니다. 뮤지컬 영화에서 뮤지컬 넘버(Musical Number)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대사를 대체하는 서사의 핵심 단위입니다. 넘버가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장면의 서사도 잘 흡수가 안 됩니다. 저는 그 연결고리가 중반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글린다 중심의 장면들에서 집중이 흐트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뮤지컬 영화의 흥행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관객의 몰입도는 음악적 친숙도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쉽게 말해, 원작 팬이라면 넘버 하나하나가 이미 감정적으로 장전된 상태로 극장에 들어오지만, 저처럼 처음 접하는 관객은 영화 안에서 그 감정을 새로 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이 160분이라는 러닝타임에 고르게 퍼지지 않고 후반부로 쏠린 느낌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각 인물들의 감정 서사가 상당히 압축되어 있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파트1과 파트2로 나눈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인물 간 관계 변화가 너무 빠르게 처리되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특히 서브 캐릭터들의 동기 부여가 설명보다 생략 쪽에 가까워서, 감정 이입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위키드 파트1에서 제가 체감한 아쉬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반부 넘버가 취향에 맞지 않아 몰입이 끊기는 구간 발생
- 엘파바 외 서브 캐릭터들의 감정 서사가 압축되어 공감대 형성이 느림
- 에메랄드 시티 입성 이전까지 시각적 스펙터클에 비해 서사 흡인력이 약함
- 국내 개봉 시 '파트1' 부제 삭제로 인해 열린 결말에 당황하는 관객 다수 발생
엔딩 하이라이트 하나가 뒤집어 놓은 것들
에메랄드 시티에 진입한 이후부터 영화가 달라집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자세가 저도 모르게 바뀌었습니다. 등받이에서 허리가 떨어지고 앞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그 이후 흐름은, 특히 후반 하이라이트 시퀀스는 그 전까지 느꼈던 지루함을 단번에 지워버릴 정도였습니다.
이 장면이 강렬했던 이유는 단순히 스펙터클해서가 아닙니다. 시각적 연출과 서사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엘파바가 '악당'이 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이,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세상이 밀어붙인 결과였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위키드가 왜 이렇게 오래 사랑받는지 몰랐는데, 엔딩에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영화 속 차별 서사는 예상보다 훨씬 어두웠습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존재가 단지 외모와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구조, 그 부조리가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굉장히 직접적으로 표현됩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발표한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뮤지컬 장르에서 소외 집단을 주인공으로 한 서사가 관객 공감을 이끌어내는 비율이 다른 장르 대비 높다고 분석되었습니다(출처: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위키드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온전히 즐겼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엔딩을 보고 나서 극장을 나오는 순간, "파트2 언제 나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파트1이 목표로 하는 것, 즉 다음 편에 대한 기대를 심는 것에는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위키드를 앞두고 고민이 있다면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작을 모른다고, 뮤지컬에 친숙하지 않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후반부까지 버틸 준비는 하고 가십시오. 160분이라는 시간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 시간을 통과했을 때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간다면 훨씬 다르게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파트2 개봉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엔딩의 잔상이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