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며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밤에는, 이상하게 허기보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헛헛함이 찾아오곤 한다. 늦은 시간이라 무언가를 거하게 차려 먹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그냥 잠들기엔 밤이 너무 길어 주방 불을 켰다. 냉장고를 뒤져 대충 남은 재료로 따뜻한 국수를 한 그릇 말아 책상 앞에 앉았다.
문득 젓가락을 들다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인물들이 유난히 지치고 외로운 날 밤 홀로 주방에 서서 소박한 야식을 만들어 먹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화려한 만찬이나 값비싼 요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화면 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을 말없이 삼키는 인물들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모니터 너머에 있는 나의 위장과 마음까지 동시에 따뜻하게 채워주는 기묘한 힘이 있다.
1.스크린 속 음식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
영화에서 음식을 다루는 방식은 단순히 인물의 생존을 위한 영양소 섭취 행위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극단적인 갈등을 쏟아붓는 상업 대작들과 달리, 인간의 일상을 잔잔하게 비추는 작품들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도마 위에서 서투르게 칼질을 하는 탁탁 소리, 낡은 냄비 속에서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 그리고 완성된 음식을 그릇에 담아낼 때 피어오르는 하얀 김 같은 풍경들은 관객의 오감을 조용히 깨운다.
카메라를 멀리 떨어뜨리지 않고 인물이 음식을 오물거리며 삼키는 목구멍의 움직임이나 숟가락을 쥔 손끝에 렌즈를 밀착시킬 때, 우리는 그 투박한 화면 속에서 가공된 그래픽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강렬한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청각적 묘사들은 관객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인물이 느끼는 삶의 고단함과 그것을 한 그릇의 온기로 달래는 해방감을 고스란히 전이시키는 훌륭한 장치로 작동한다.
2.남들의 정형화된 공식을 지워내야 하는 이유
종종 내 공간에 올릴 글을 쓰다 보면, 누군가의 눈에 잘 띄기 위해 유행하는 키워드를 기계적으로 나열하거나 남들이 정해놓은 딱딱한 서식에 내 생각을 억지로 짜 맞추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인공적인 냄새가 풍기는 글을 찍어내다 보면 정작 이 공간을 채우려 했던 내 진짜 목소리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영화 속 명대사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가르치려 들거나 감정을 강요하는 거창한 표현보다, 지친 하루의 끝에 건네는 "출출한데 국수나 한 그릇 먹을래?"라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가슴을 더 먹먹하게 만드는 법이다.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된 문장들을 복사 붙여넣기 하기보다, 조금은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내 실제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이야기를 한 줄씩 적어 내려갈 때 글의 진정성도 비로소 살아난다. 뻔한 공식을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 고요함 속에서 길어 올린 주관적인 시선과 온기를 정직하게 채워 넣는 것이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화면 속 야식 한 그릇을 보며 다시금 깊이 깨닫는다.
3.젓가락을 내려놓고 오늘 밤의 기록을 마무리하며
그릇 바닥이 보일 때까지 따뜻한 국물을 마지고 나니, 밤새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게 느껴진다. 행간의 흐름을 다시 점검하며 모니터 위에 띄워진 문장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이 시간은, 하루 동안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 잔뜩 날이 서 있던 나 자신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치유의 여정과도 같다.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 속에서 남들과 똑같은 패턴의 글을 복제해 내기 바빴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이번 글에서는 단 한 단어를 쓰더라도 나만의 고유한 호흡과 솔직한 숨결을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인위적인 형식에 내 생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고, 내 삶의 궤적에서 묻어난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적어 내려갈 때 비로소 이 공간도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스크린 속 인물이 야식 한 그릇으로 고독을 이겨내듯, 이 밤의 따뜻한 감상을 나만의 문장으로 채워 넣는 작업은 내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솔직하고 담담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