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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by myview22087 2026. 5. 23.

영화를 보기전엔 예상 못했더너 스토리였습니다. 세탁소와 세금 이야기로 시작하는 멀티버스 영화라니. 처음 줄거리를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참신한 SF를 찾기 어려워진 요즘, 이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제가 찾던 작품이었습니다. 멀티버스라는 설정으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낸 방식이 이렇게까지 정교할 줄은 몰랐습니다.

멀티버스가 SF 장치가 아닌 이유

요즘 멀티버스를 다루는 영화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다른 우주에서 나는 더 강한 히어로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전혀 다른 질문을 꺼냅니다. "다른 우주에서도 나는 여전히 세금 때문에 괴로울까?" 저도 처음엔 이게 유머 코드인 줄만 알았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질문이 얼마나 본질적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의 멀티버스는 사실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에 가깝습니다. 반사실적 사고란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는 인지 과정을 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사고방식이 후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에블린이 각 평행우주의 자신을 만날수록, 그 감정이 영화 전체에 묻어납니다. 더 잘된 삶처럼 보이는 우주, 더 멋진 직업을 가진 자신. 그 비교가 반복될수록 현재의 선택은 점점 가벼워집니다.

250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이 수준의 시각효과를 뽑아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핫도그 손가락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진지한 척 허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강하게 꽂혔습니다.

선택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선택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선택 과부하(Choice Overload)라고 부릅니다. 선택 과부하란 가능성이 지나치게 많아질 때 오히려 결정 능력이 저하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영화 속 조이(잡우 투파키)가 베이글 블랙홀 앞에 서는 장면이 바로 이 상태의 극단입니다. 모든 것을 경험한 존재에게 어떤 선택도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 허무함이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그려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무주의 앞에서 영화가 내놓은 답

이 영화의 빌런 조부 투파키는 허무주의(Nihilism)를 체화한 인물입니다. 허무주의란 세상에 본질적인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철학적 입장을 뜻합니다. 모든 우주를 경험한 뒤 내린 결론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 철학적으로 보면 반박하기 쉽지 않은 주장입니다. 저도 이 지점에서 영화가 어떻게 이 논리를 뚫고 나갈지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거창한 반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제시하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것은 친절(Kindness)입니다. 키호이콴이 연기한 웨이먼드가 이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그는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도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 반복이 그의 선택이고 그의 삶입니다.

이 접근 방식은 실존주의(Existentialism)와 맞닿아 있습니다. 실존주의란 삶에 선험적인 의미가 없더라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철학 사조를 뜻합니다. 영화는 허무주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에서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얹습니다. 반박할 구석이 없어 보이는 허무주의를 낙관과 다정함으로 넘어서는 이 과정이,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부분입니다.

영화가 이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허무주의를 논리로 반박하지 않고 감정과 관계로 돌파한다.
  2. 거창한 영웅적 결단 대신 일상적인 친절의 반복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3. 빌런조차 피해자로 그려 관객이 감정이입할 여지를 남긴다.
  4. 웨이먼드라는 인물을 통해 수동적으로 보이는 태도가 실은 가장 강한 선택임을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세계에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명제를 핫도그 손가락과 세탁소라는 가장 엉뚱한 형식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출처: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Nihilism)

이민자 가족 이야기로서의 깊이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부분은 멀티버스가 아니라 에블린과 조이의 관계였습니다. 에블린은 미국에 이민 온 중국계 여성입니다. 그녀의 현실은 세무 조사, 남편의 이혼 요구, 딸과의 갈등, 전통적인 아버지와의 세대 충돌이 동시에 쏟아지는 상태입니다. 멀티버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혼돈입니다.

이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충돌은 문화적 정체성 갈등(Cultural Identity Conflic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문화적 정체성 갈등이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충돌을 뜻합니다. 1세대는 살아남기 위해 주류 문화에 동화하는 경향이 강하고, 2세대는 그 과정에서 억압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 합니다. 에블린은 돈과 생존을 말하고, 조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말합니다. 이 두 언어가 서로를 통과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영화 내내 이어집니다.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의 세대 간 갈등은 학문적으로도 여러 번 다뤄진 주제입니다. 이민 2세대가 경험하는 이중 문화 정체성 스트레스는 심리적 적응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Immigration & Refugees)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이민자 가족 드라마로서도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멀티버스 설정을 걷어내도 에블린과 조이의 이야기는 충분히 하나의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양자경이 그동안 주로 조연을 맡아왔다는 사실이 이 영화에서 새삼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 연기를 품고 있는 배우였다니.

결국 영화는 수천 개의 우주를 거쳐 가장 단순한 결론으로 돌아옵니다. 그래도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 엄마가 딸에게 하는 말이지만, 사실 이건 모든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우리가 결국 선택하는 것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생각을 덜 하게 됐습니다. 어떤 우주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고 나니, 지금 이 선택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F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물론이고, 가족과 관계에 지쳐 있는 분이라면 더더욱 권하고 싶습니다. 완벽한 선택을 찾는 것보다 지금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