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영화를 꽤 오랫동안 외면했습니다. 한국어 제목이 뭔가 로맨틱 코미디처럼 들려서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가 가장 망가졌던 시절을 꺼내 보여주는 것 같아서 며칠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방황이 실패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말 대신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한국어 제목이 만든 진입 장벽, 그리고 원제의 온도
이 영화의 원제는 노르웨이어로 '세상에서 가장 최악인 사람(Verdens verste menneske)'이고, 영어 제목도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입니다. 저는 이 제목이 훨씬 더 이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제목은 연애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들리는데, 영화가 실제로 이야기하는 건 그보다 훨씬 폭이 넓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가장 별로인 인간이라고 느끼는 그 상태,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아킴 트리에(Joachim Trier) 감독의 이 작품은 2021년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워낙 평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한국어 제목이 저에게는 오래도록 진입 장벽이었습니다. 요즘 워낙 바빠서 영화관에 자주 가기가 어려운지라, 집에서 뭘 볼까 하다가 드디어 틀게 된 작품입니다. 그리고 보자마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좋을 분들을 먼저 정리해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 하는 일마다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를 반복하는 분
- 스스로를 착하지도, 성실하지도, 신실하지도 않다고 느끼는 분
-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처럼 느껴지는 분
저는 스스로를 꽤 성실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데 진짜 최악으로 회피행동을 하며 지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직장도, 학교도, 연애도 다 중도에 그만둬버리고 이제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때요. 처음엔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결국 내가 별로인 인간이어서 그랬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했습니다. 그 순간이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정체성 유예,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 유예(Identity Moratorium)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직 확정하지 못한 채 탐색을 이어가는 발달 심리학적 상태를 뜻합니다. 심리학자 제임스 마르샤(James Marcia)가 에릭슨의 발달 이론을 바탕으로 제시한 개념인데, 이 상태는 미성숙의 표시가 아니라 정체성 형성 과정의 자연스러운 단계로 봅니다. 쉽게 말해 '아직 나는 누구인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머무는 시간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주인공 줄리(Julie)가 의학에서 심리학으로, 다시 사진으로 방향을 바꾸는 과정이 단순한 변덕처럼 보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삶으로 자신을 고정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한 방향을 선택하는 순간 나머지 가능성이 전부 사라진다는 감각이 그녀를 붙잡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그건 제가 직접 겪어본 감각이기도 했습니다.
이 유예 상태가 길어지면 선택지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처리되지 못한 선택들이 쌓이면서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줄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지만, 목차만 계속 고치면서 첫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제가 회피행동을 반복하던 시절과 정확히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이탈감, 내 삶에서 조연이 되는 감각
이탈감(Alienation)이란 자신이 속한 환경이나 관계에서 심리적으로 분리된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지루함이나 권태와는 다릅니다. 관계 자체는 멀쩡한데, 그 안에서 자신의 선택권과 주도성이 점점 줄어든다고 느끼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줄리가 악셀(Axel)과의 안정적인 관계 안에서도 "내 삶의 조연이 된 것 같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이 이탈감을 정확하게 짚습니다. 악셀은 이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입니다. 작업의 리듬이 분명하고, 삶의 방향이 정리되어 있으며, 자신의 선택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의 곁에 있다는 것은 이미 닫힌 선택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 이탈감을 단순히 사랑이 식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줄리가 이 관계를 떠난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확정된 삶을 끝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별은 거부가 아니라, 그 무게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그게 더 솔직한 독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편에 있는 에이빈드(Eivind)와의 관계는 반대 방향의 유예를 제공합니다. 무엇이 되어야 할지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선택을 서두를 필요 없는 시간입니다. 그 자유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조건부입니다. 현재를 완전히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 위에 놓인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숨 고를 여백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이 됩니다.
선택의 심리, 번뜩이는 순간보다 이후를 사는 시간
선택의 심리(Decision Psychology)는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을 내리고, 그 이후를 어떻게 감당하는지를 연구하는 심리학의 한 영역입니다.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그의 저서에서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만족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시간이 멈추는 장면은 이 선택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시퀀스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시간표, 결혼과 커리어와 생애 주기의 시계는 멈추고 줄리 자신의 감정 시간만 흐릅니다. 그 찰나에 그녀는 처음으로 욕망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경험합니다. 비록 그 선택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최악의 인간이 되는 길일지라도.
그러나 영화는 그 확신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곧바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솔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보통 선택의 순간을 너무 크게 다루는데, 실제로 중요한 건 선택 이후를 살아내는 시간입니다. 줄리에게 진짜 변화가 찾아오는 건 악셀이 병으로 무너져 가는 시간을 옆에서 지켜보면서입니다. 선택이란 완벽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린 결정의 결과를 끝까지 감당하는 일이라는 걸 그 장면에서 보여줍니다.
결말에서 줄리의 표정이 영화 내내 가장 평온했던 이유도 여기 있다고 봅니다. 더 나은 선택지를 찾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누군가의 기대나 투사 없이 자신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혼자서 선 율리에의 모습, 저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종류의 감동이 아니라 가슴에 은은하게 퍼지는 묵직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방황을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그게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걸 압니다. 최악의 인간이라는 느낌이 드는 시절을 보내고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위로 대신 그냥 옆에 있어주는 사람처럼 느껴질 겁니다. 어쨌든 인생은 진행된다는 것, 그리고 그 진행 속에 성장이 찾아온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