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가 되면 저는 묘하게 무거운 영화가 당깁니다. 화려한 블록버스터보다 조용하고 오래 남는 작품들이요. 그렇게 찾아보다 만난 게 <바튼 아카데미>였는데, 솔직히 처음엔 제목만 보고 지나쳤던 영화였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개봉 당시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극찬을 받은 작품이더군요. 직접 보고 나서야 왜 그랬는지 이해했습니다.
충돌할 듯 충돌하지 않는 두 사람의 연기력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미국 명문 사립학교 바튼 아카데미입니다. 크리스마스 방학에 집에 돌아가지 못한 교사 폴 허넘과 학생 앵거스 털리, 그리고 학교 식당 조리사 메리 램이 기숙사에 함께 남겨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설정만 보면 흔한 성장 드라마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습니다.
폴 허넘을 연기한 폴 지아마티는 이 영화로 커리어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받으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결국 <오펜하이머>의 킬리언 머피에게 밀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배우의 표정 하나하나가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냉소적이고 고집스러운 교수라는 캐릭터를 단순히 '재미없는 어른'으로 그리지 않고, 그 안에 쌓인 외로움과 자존심이 동시에 느껴지게 만들더군요.
더 놀라웠던 건 앵거스 털리를 맡은 도미닉 세사였습니다.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두 배우가 서로를 의식하는 그 미묘한 긴장감이 화면 밖으로까지 전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멱살만 안 잡았지 위아래도 없이 막말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꽤 있는데, 한국식 사제 관계에 익숙한 저로서는 보는 내내 등에 땀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장면들이 코미디로 읽혔습니다. 영화 장르가 '코미디 드라마'인 이유를 그제야 납득했습니다.
메리 역할을 맡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실제로 수상했습니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라는 무게감을 과하지 않게 표현한 덕분에, 오히려 그 슬픔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루저 두 사람이 만들어낸 사제관계의 온도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떠올린 단어는 '루저'였습니다. 폴 허넘은 명문 사립학교의 교수지만 가족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사람입니다. 앵거스는 우등생이지만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퇴학을 몇 차례 당한 아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위치와 실제 삶 사이의 간극이 두 사람을 묘하게 닮아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심리학적으로 봐도 흥미롭습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제시한 기본적 신뢰(basic trus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기본적 신뢰란 유년기에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괜찮다"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심리적 안정감을 뜻합니다. 앵거스는 바로 이 신뢰를 부모에게 받지 못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폴 허넘의 까칠한 배려가 그 틈을 조금씩 채워갑니다.
심리학자 찰스 스나이더(Charles Snyder)는 희망 이론(Hope Theory)을 통해 희망을 단순한 낙관론이 아닌 구체적인 심리 구조로 설명했습니다. 희망 이론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여러 경로를 찾으며, 실제로 걸어갈 수 있다는 신념이 합쳐질 때 희망이 자란다는 이론입니다. 스나이더의 연구는 긍정심리학 분야에서 꾸준히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이론으로 영화를 다시 보면, 폴이 앵거스를 지키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장면이 달리 읽힙니다. 교사로서 잃을 것이 많았음에도, 그는 앵거스가 살아갈 길을 열어주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놓습니다. 경로 사고(pathway thinking)와 실행 의지(agency thinking)가 단순히 개인의 내면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걸 이 장면이 보여줍니다. 경로 사고란 목표를 향한 다양한 길을 구상하는 능력이고, 실행 의지란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가겠다는 동기와 추진력입니다.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울분을 토해내듯 막말을 던지는 장면들이 역설적으로 치유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속을 꾹꾹 삼키는 것보다 차라리 저렇게 터트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어쩌면 그게 이 두 사람이 버텨온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사제관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처음엔 서로를 경계하고 지적하는 관계로 시작합니다.
- 함께 남겨진 시간 속에서 서로의 밑바닥을 보게 됩니다.
- 밑바닥을 서로 알게 된 이후에야 진심 어린 조언과 돌봄이 가능해집니다.
- 결국 스승이 제자에게 손을 내밀며 관계가 완성됩니다.
이 순서가 일반적인 멘토·멘티 서사와 다른 점은, 처음부터 존중이 아닌 충돌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상 느낀 건, 이런 방식의 관계가 오히려 더 오래가더라는 겁니다. 처음부터 예의 바른 사이는 갈등이 생겼을 때 무너지기도 쉬우니까요.
희망의 심리학, 앵거스의 눈빛이 달라진 이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눈 덮인 길을 걷는 앵거스의 모습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도, 그의 앞날도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처음과는 달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해피엔딩도 아니고 문제 해결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까 하는 느낌이요.
심리적 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이 그 답에 가깝습니다. 심리적 탄력성이란 역경과 실패를 겪은 후 다시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능력을 뜻합니다. 이 능력은 혼자만의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탄력성은 단 한 명의 신뢰할 수 있는 어른과의 관계로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도 회복탄력성의 핵심 요소로 신뢰 관계를 꼽고 있습니다.
앵거스가 달라진 건 상황이 바뀌어서가 아닙니다. "나를 믿어주는 어른이 한 명 있었다"는 경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게 심리학에서 말하는 희망의 씨앗입니다. 희망은 미래가 보장될 때 생기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도 "나는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이 영화가 두 시간에 걸쳐 조용히 설득해 내는 메시지입니다.
영화는 덤으로 사회비판도 담아냅니다. 부자들은 기부금과 인맥으로 명문 대학 입학권을 쥐고 있고, 능력 있는 가난한 아이들은 등록금 앞에서 멈춰야 하는 현실을 영화는 꽤 냉소적으로 짚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비판이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두 주인공 모두 그 구조 안에서 이미 제각각의 방식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는 요즘, 이 영화는 오히려 낯선 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요란하지 않지만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이 이어지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특별한 영화를 찾고 있다면, 그리고 지금 조금 지쳐있다면 더욱 추천하고 싶습니다. 앵거스가 눈길을 걸어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유독 오래 남을 겁니다.
--- 참고:긍정심리학 포털(positivepsychology.com), 미국심리학회(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