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요일 낮에 별 기대 없이 틀었다가 손에 땀을 쥐고 끝까지 보게 된 영화가 있었습니다. 2016년 개봉한 첩보 액션 영화 바스티유 데이,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이름만 봤을 때는 그냥 유럽 배경 흥행 노리는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스토리 구조는 꽤 탄탄하고 전개 속도도 빠릅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고, 그 얘기를 좀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파리 혁명기념일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 구조
영화 제목인 바스티유 데이(Bastille Day)는 프랑스의 국경일인 7월 14일 혁명기념일을 가리킵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역사적 사건으로, 매년 이날 파리 도심에서는 대규모 퍼레이드와 군중이 모입니다. 영화는 이 축제의 혼란, 즉 수많은 인파가 뒤섞이는 공공질서의 취약 지점을 범죄에 활용하려는 세력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줄거리를 간략히 짚으면, 파리에서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마이클이 우연히 테러용 폭탄이 든 가방을 훔쳤다가 폭발 직후 테러범으로 몰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CIA 현장 요원 브라이어가 그를 체포하지만, 심문 과정에서 마이클이 진범이 아님을 직감하고 두 사람이 공조하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설정 자체는 정말 잘 짜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소매치기 기술이 범죄 수사에 실제로 활용되는 장면은 꽤 신선했고, 36시간이라는 타임 리밋(time limit) 구조, 즉 제한된 시간 안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장치가 긴장감을 계속 끌어올립니다.
영화의 배후는 프랑스 특수부대 내 부패한 대원들이 혁명기념일의 대규모 시위를 이용해 중앙은행 금고를 터는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 서사 장치가 바로 매크거핀(MacGuffin)입니다. 매크거핀이란 영화 이론에서 플롯을 움직이는 핵심 소품이나 목표물을 뜻하는 용어로, 이 영화에서는 결정적 증거가 담긴 USB가 그 역할을 합니다. 마이클이 이 USB를 빼내고 브라이어가 주동자를 제압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됩니다.
본 시리즈(Bourne series)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가졌는데, 스케일과 스토리 골격은 분명 그 계보를 잇는 느낌이었습니다. 촬영 기법 중 하나인 핸드헬드 촬영, 즉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어 현장감과 불안정함을 의도적으로 살리는 방식도 여러 장면에서 활용되어 추격 장면에서 긴장감을 높입니다.
이 영화를 볼 때 체크해 두면 좋은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바스티유 데이(7월 14일) 군중을 활용한 폭동 선동 설정
- 소매치기 기술이 첩보 공조에 실제로 쓰이는 장면
- 프랑스 특수부대 내 부패 세력이 배후라는 반전 구조
- 36시간 타임 리밋이 만들어내는 빠른 전개
- 결정적 증거 USB를 빼내는 마이클의 최후 활약
캐스팅의 아쉬움, 그리고 연기력에 대한 솔직한 생각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스토리가 아니라 배우들이었습니다. 주연 두 명 모두 저는 사전에 잘 몰랐던 배우들이었는데, 보고 나서도 그 인상이 강하게 남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좀 생각해봤습니다.
이드리스 엘바(Idris Elba)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토르 시리즈에서 헤임달 역으로 알려진 배우이고, 영국 드라마 루터(Luther)에서 강렬한 형사 캐릭터를 연기하며 해외에서는 꽤 인정받는 배우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그가 나온 다른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 비교해도 이 작품에서의 연기는 다소 평평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 에너지가 절반쯤만 나온 것 같았습니다.
리처드 매든(Richard Madden)은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 롭 스타크 역, 그리고 마블의 이터널스(Eternals)에서 이카리스 역으로 알려진 배우입니다. 열심히 하는 건 화면에서 보이는데,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첩보 액션 영화에서는 배우가 가진 자연스러운 존재감이 연기력만큼 중요합니다. 그 부분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산업에서 캐스팅 디렉팅(casting directing)이란 단순히 유명 배우를 섭외하는 것을 넘어 배역의 톤과 배우의 에너지를 매칭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스토리와 캐스팅 사이에 약간의 불일치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신인이나 무명 배우 중에도 그 역할에 딱 맞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있을 텐데, 캐스팅 디렉팅이 얼마나 영화의 완성도를 좌우하는지 이 영화를 보며 새삼 실감했습니다.
영화 전문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저예산 장르 영화에서 흥행 여부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캐스팅과 연기 설득력이라고 합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이 영화가 개봉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그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장르 영화 관람 행태 분석에서도 액션 첩보물 장르에서 관객이 몰입에 실패하는 주요 원인으로 주연 배우의 캐릭터 흡입력 부재가 상위권에 꼽혔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래도 제가 이 영화를 두 시간 내내 끄지 않은 건, 파리 도심과 지붕 위를 넘나드는 추격 장면의 로케이션(location shooting) 덕분이었습니다. 로케이션 촬영이란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찍는 방식으로, 파리의 골목과 옥상이 주는 시각적 밀도가 연기력의 빈틈을 어느 정도 채워줬습니다.
결국 바스티유 데이는 1류 제작진의 스토리 감각과 2류 완성도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영화입니다. 스토리 골격은 분명 탄탄하고,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가볍게 손에 땀 쥐고 볼 수 있는 첩보 액션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충분히 볼 만한 선택지입니다. 다만 연기력과 촬영 완성도에 기대치를 높게 잡으면 실망할 수 있으니, 그 부분은 조금 낮춰 두고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그 기대치를 조금 내려놓은 덕분에 꽤 즐겁게 봤습니다.